김홍식 (19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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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홍식은 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까지 법조인, 관료, 정치인, 언론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충청남도 아산군 출신으로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변호사시험과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다. 조선총독부 관료로 평안남도 양덕군 군수와 경기도 부천군 군수를 역임했다. 해방 후에는 경기도 광공국장, 사법위원, 충청남도지사, 법제처 차장, 무임소장관, 체신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민주공화당 서울시 사무국장, 서울신문 사장,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김홍식은 충청남도 아산군 출신으로[1]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 조선변호사시험과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료와 대한민국 정부의 고위 공직을 역임했다.[2]
김홍식은 충청남도 아산군에서 태어났다.[1]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변호사시험과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다. 조선총독부 관료로 근무하며 평안남도 양덕군 군수, 경기도 부천군 군수를 역임했다.[2]
2. 생애
2. 1.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군에서 태어났다.[1] 1931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 조선변호사시험과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및 행정과에 모두 합격했다. 조선총독부 관료로 근무하며 1938년 평안남도 양덕군 군수, 이어서 경기도 부천군 군수를 역임했다.[2]
2. 2. 해방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김홍식은 경기도 광공국장(1945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료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1956년 사법위원을 거쳐 1960년부터 1961년까지 충청남도지사를 역임했다. 1961년에는 법제처 차장을 맡으며 법제 업무를 담당했다.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여 서울시 사무국장을 맡았고, 이후 무임소장관 (1963년-1964년)에 임명되었다. 1964년부터 1965년까지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박정희 정부의 주요 정책 수행에 참여했다. 1965년 서울신문 사장 및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을 맡는 등 언론 및 정치 분야에서도 활동했다.[2]
3. 약력
3. 1. 학력
1931년 경성법학전문학교 졸업[1]
3. 2. 경력
연도 | 경력 |
---|---|
1932년 | 조선변호사시험 합격 |
1932년 | 고등문관시험 사법과·행정과 합격 |
1938년 | 평안남도 양덕군 군수 |
경기도 부천군 군수[3] | |
1945년 | 경기도 광공국장 |
1956년 | 사법위원 |
1960년 | 충청남도지사 |
1961년 | 법제처 차장 |
1963년 | 민주공화당 서울시 사무국장 |
1963년 | 무임소 장관 |
1964년 | 체신부 장관 |
1965년 | 서울신문 이사, 민주공화당 중앙위원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경기도 광공국장(1945년), 사법위원(1956년), 충청남도지사 (1960년-1961년), 법제처 차장(1961년), 민주공화당 서울시 사무국장(1963년), 무임소장관 (1963년-1964년), 체신부 장관 (1964년-1965년), 서울신문 사장 및 민주공화당 중앙위원(1965년)을 역임했다.
참조
[1]
데이터베이스
韓国近現代人物情報
http://db.history.go[...]
[2]
뉴스
『親日人名辞典』主要人物と行蹟
http://www.hani.co.k[...]
ハンギョレ(聯合ニュース引用)
2008-03-27
[3]
뉴스
‘친일인명사전’ 주요인물과 행적
http://www.hani.co.k[...]
한겨레 (연합뉴스 인용)
200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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